9월 14일 전자음악연구소 CREAMA와 주한 프랑스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임수연 피아노독주회> 'Ça son Francais' 콘서트에 대한 이상빈님께서 보내주신 음악회 후기를 기재합니다. 하단의 내용은 음악회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가 아닌 주관적인 음악회 후기임을 공지드립니다. <임수연 피아노독주회> 'Ça son Francais' 콘서트 후기를 보내주신 이상빈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아싱빈
필자는 CREAMA라는 기관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올해 봄에 알게 되어 4-5차례의 연주회에 참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기간을 제외하고 전자음악작품을 메인으로 구성하는 연주회가 없었기도 했거니와, 필자가 학교에서 배우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음악에 어떻게 접목해야 할지 그 해답을 모색하기 위함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매번 큰 기대를 가지고 연주회에 방문을 했었고 이번 연주 역시 참석하게 되었다. 피아니스트 임수연의 팬이기도 했고 내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매주 작은 연구모임을 열고 있는 제나키스의 음악도 한 곡 초연된다고 하여 의무감마저 들게 하는,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첫 곡인 제나키스의 <à r>은 사실 크게 연구해보지 않은 작품이었다. 알고만 있던 상태의 작품이었고 길이도 짧아 간단하게 도입곡으로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던 곡이었다. 곡의 특성상 굉장한 암보력을 요한다. 엄청난 엔트로피로 제멋대로 구성된 음표들을 거의 몸으로 외워야 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나키스의 <헤르마(Herma)>나 <Mists>처럼 주요작품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아서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 작품이라 다시는 들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이 연주는 더 소중했다. 역시 임수연답게 연주는 악보를 정확히 추적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작곡가에게 추신: 라벨을 이 곡에 당신의 방식으로 숨겨 놓은 것이 맞는가?
두 번째 곡인 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의 입맞춤>. 메시앙은 모든 작곡과 학생들이 거쳐가는 하나의 관문이다. 불레즈, 슈톡하우젠은 피해도 메시앙은 모두들 한번쯤 연구하게 된다. 낭만파에는 브루크너가 있다면 근대에는 메시앙이 있어서(현대보다는 근대라고 하고 싶다) 음악은 빛난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앙식 화음과 특유의 타건이 빚어내는 음색적 텍스쳐를 통해 다음 곡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신비한 구름을 생성하는 느낌이었다고 받아들였다. 너무나 엄숙한...그리고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가지게 된다.
세 번째 작품은 조나단 하비의 곡이다. 영국 작곡가인데 다른 영국의 작곡가(아데스 같은)들의 성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사실 특유의 불란서적인 관능미와 실험적인 음적 조탁. 그렇다고 과도하게 감정적이지는 않은 약간의 절제미를 보여주는 하비의 음악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스펙트럴 음악가로 자주 분류되는 음악가인 만큼 음색적인 면은 매우 훌륭한 곡이었고 임수연의 연주 역시 적당한 묵직함을 잡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테이프를 통해 고장난 듯한 피아노 음색, 미분음정을 오묘하게 이용한 피아노음이 흘러나왔고 연주자와 스피커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우리는 점점 메시앙의 무덤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다. 임수연의 하강음계는 메시앙의 무덤을 강렬히 내리파고 있었다.
인터미션 후의 곡은 <C 시리즈> 라는 곡이었다. 요즘 부쩍 한국 현대음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피에르 조들로프스키의 곡이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이 곡은 단번에 내 귀를 사로잡았다. 프리페어링이 된 피아노에서 나는 존 케이지표 사운드가 특이한 소리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사운드 콜라주 테이프와 함께 묘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이었다. 사실 내가 작업중이었던 신작과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어서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감도 있었다. 임수연의 피아노 연주는 이 테이프와 함께 상호작용을 하며 붙어서 가고 있었다. 테이프 음악에 딸린 연주를 잘한다는 말은, 테이프 음악을 실시간 전자음향 음악처럼 연주하는 것일 것이다. 이날 너무 멋진 연주를 무료로(?) 들어 너무 황송했다. 다른 생각으로는 내심 이 곡을 조금 더 기계적인,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플레이로 연주를 하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대단히 직관력과 에너지가 돋보이는 음의 조합들이지만 미디가 연주하듯 피아노를 쳐 보았으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음 곡은 페쏭이라는 작곡가였는데 사실 잘 모르던 작곡가이다.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작품은 한 곡도 들어보지 못했다. 구름의 이야기. 오분도 되지 않는 이 짧은 곡에서 무수히 많은 횟수에 걸쳐 생겨나는 약간은 망설여지는 듯한 음형의 움직임과 속닥거림. 감상적인 곡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던 곡이기도 했고, 소품에 가까웠던 곡이라 그냥 제목 그대로 “구름의 이야기를 잠깐 들었다“ 라는 느낌만 어렴풋이 구름처럼 가지게 되었다. <빛은 우리를 안아줄 팔이 없다>라는 곡 역시 소품이었다. 락헨만의 <귀로>에서 들리는 드르륵거리는 스크래치 소리를 기저에 깔고 미니멀한, (어찌 보면 조금 감성적인 케이지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소재를 진행해 나갔다. 오히려 이것이 조금 더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듯 했다. 담담한 연주와 터치로 곡을 왜곡함 없이 정확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곡으로 <느와르 시리즈>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테이프와 피아노 솔로를 위한 곡이다. 테이프에서는 나름 심각한 스릴러 장면을 재현한 듯한 상황이 오디오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비록 텍스트 자체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매우 새로운 형태의 곡이었고(사실 내가 작곡하던 신작이랑 너무 비슷해서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한국에서는 최소한 자주 볼 수 없던 참신한 형태의 전자음악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현대음악을 고집하는 피아니스트에게 꼭 연주해 보라고 추천해 보고 싶은 음악이다. 원맨쇼를 멋지게 해낸 임수연 피아니스트에게 큰 박수를 보냈었다. 악보를 사실 본 적이 있었는데 테이프에 맞추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피아노 파트가 매우 난이도가 높다. 피아니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특히 피아노와 테이프가 미분음정을 사이에 두고 상호작용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혼연일체가 되어 거의 라이브 전자음향과 같은 연주를 들려주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곡에서 하나 조금 더 아이디어를 보태자면 전자음향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우퍼를 한 두 대 정도 놓았으면 더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만에 참신하고 색채적인 레퍼토리를 한 공연에서 이렇게나 많이 만나게 되어 너무 관객으로서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의 CREAMA의 행보에 더 기대감을 실어주는 공연이라 확신한다.